훈련소 때 적었던 일기를 읽어보다 너무 재밌어 여기에 올려본다.
살면서 글을 써본 적이 많지 않아 문체가 들쭉날쭉하며 느끼하다.
문체를 만들어가는 시도라 생각하며 봐주길 바란다.
(일기의 내용 그대로 적었다. 수정하지 않았다.)
2024.04.02 화요일
아침에 울리는 종소리가 커서 일어나면서 깜짝 놀랐다.
1주 차는 훈련하지 않는다고 했다. 5주 차까지 너무 많이 남았다. 밥은 맛있다.
어떻게든 버틴다. 어떤 일을 시켜도. 어떻게 혼나도 견딘다.
2024.04.03 수요일
삼일차
혼나고, 혼나고, 계속한다. 기준은 왼손으로, 앞으로 1보 뒤로 일보
다리가 나갈 때 숫자를, 좌·우로 일보 발이 모일 때
숫자를 외친다. 군가는 육군가, 육군훈련소가 핸드폰도 없고
들려주는 획수가 적어 외우기 어렵다.
목소리가 커지고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 같다
시발 버텨 그냥 조금만 참자 계속 참자.
2024.04.08 월요일
끝없이 타들어가는 태양 및 서서
인생의 에피소드를 써 내려가는 전우들, 그리고 나.
새벽바람은 살을 파고들어 우리를 움켜쥐고
조교는 훈육이라는 이유로 우리를 향해 호통친다.
에피소드의 끝을 내기엔 너무 빠르다.
2024.04.10 수요일
날이 선선하다. 바람도 불고. 시원하다.
인간다운 삶이 이런 건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인가.
2024.04.21 일요일
우리 인간들은 중력을 거슬러가며 위로 자라난다. 그러나 멈춘다. 0
이 중력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지만, 많은 것을 앗아간다.
오래 뒤거나, 걸을수록 힘들어지지만 설정한 목표를
이뤄 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중력은 우리를 내리기만 하지 않는다.
2024.04.23 화요일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갔다. 감기는 낫지 않는다. 내일은 세열수류탄을
던지는 날이다. 긴장되는 마음 아무리 감춰보아도 내일은 온다.
그래도 다행인 건 가능 길이 공사 중이라 돌아간다고 공격배낭을
가져가게 해 준단다.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는데 에바.
이제 남은 건 각개전투 구르고, 오르고, 기어가고 이것만 끝내면 수료다. 기다려라.
2024.04. 언젠가
군대에서 어떻게 수학, 영어를 공부해야 할까?
공부시간의 절반 이상을 수학에 사용한다. 목표는 군대에서 고등수학을
끝내는 것이지, 그 이유는 입시 수학이 수학의 기초라고 생각해서다.
자대 가서 한 달 정도 열심히 일하고 그 이후부터 연등을 신청하거나
오전오후 일과 시간에 해야 할 듯하다.
하지만 이것도 선임들이 좋아야 가능한 것이겠지.
영어는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일단 단어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기 대문에
하루 30개씩 외워야 할 것 같다.
또 많이 사용하는 숙어나 문장을 외우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파이팅 하자. 기초가 제일 중요해 힘들더라도 기초부터 하자.
2024.04.28 일요일
난 소신을 지키는 사람인가? 잘 모르겠다.
애초에 나에게 지킬 소신이 있었는가도 모르겠다.
나만 빼고 모두 소신이 있는 게 아닐까? 지킬 소신을 만들어 봐야겠다.
난 남들이 하기 싫은 일 나도 하기 싫다. 남들 눈에 띄기 싫다.
칭찬받는 건 또 엄청 좋아한다. 힘든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
내가 군대 오고 알았다. 뇌에 박힌 나의 정신을 바꾸려면 더 나를 몰아붙여야 한다.
아무튼 모든 걸 종합해 봤을 때 양보하자 근데 불합리한 상황에서 까지 양보하려 하지 말자.
강한 사람에게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 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감상
8일 일기를 보면 멋있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느끼하다. 부끄럽다.
마지막 일기를 쓴 이후로 1년이 되어간다. 지킨 것도 많고 지키지 못한 것도 많다.
28일 일기에서 소신이라 적은 것은 가치관을 말한다. 당시 소신과 가치관을 동일시 생각했다.
군대에 들어오기 전 21년을 생각 없이 살아왔다.
다른 개가 짖으면 이유 없이 따라 짖는 개처럼 주관 없이 살았다.
지금 까지 남들 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했더니 생존해 있어 생각하길 그만뒀다.
하지만 군대는 남들 시키는 대로 하면 죽을 것 같아 생각을 조금씩 바꿔갔다.
가장 첫 시도는 책 읽기였다. 가치관을 형성하진 못했지만.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드디어 생각이 이어지기 시작한 거다.
무조건 자유론을 읽어봐야 한다. 자유가 인식되고, 생각이 이어지게 되는 시작점이다.
강한 사람에게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 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진 못했다.
내가 강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너무 나약하고 아는 게 없어 도와주질 못했다.
양보할 때 양보하고 불합리한 상황에서 까지 양보하지 말자는 문제는 잘 실천했다.
너무 과해 이기적이게 변해 버렸다.
지금은 그 사이 임계점을 찾고 있는 중이다.
1년전의 내가 이렇게 어렸다. 물론 지금도 어리지만 지금 보다 더 어렸다.
1년 뒤 이 글을 보면 얼마나 더 어려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