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가 교수대 위에 올라 짓는 마지막 표정, 보는 이들의 뇌리에 평생토록 기억에 남는다. 4달 전, 4월 1일의 나는 사형수였다. 나의 끝(시작)을 축하라도 해주듯 달가운 봄은 기분 좋은 바람을 선사했다. 마치 엊그제 같던 일들, 살가운 바람은 어디 가고 죽일 듯이 바라보는 해에게 조아리는 계절이 왔다.
이곳의 나와 바깥의 난 사뭇 다른 이중적 인간이 된 것 같다. 나에 대한 고민을 시도 때도 없이 했다.
첫 번째 고민, 신념이다. 신념을 견고히 해야 다른 이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 것인가? 위 질문으로 행동에 대한 신념이 생겼다. 행동(실천)에 이르기 전 전제로, “남에게 고의적인 나쁜 행동 하지 않는 것” 이로 인해 곁가지로 나온 생각이 “복수하지 않는 것”이다. 어설픈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두 번째 고민, 어른의 정의이다.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어른은 진지함, 과묵함, 책임감이 골고루 갖춰진 인간상을 떠올린다. 나를 대하는 아빠의 태도를 제삼자가 봤을 땐 보편적 어른의 상보다는 친구를 떠올린다. (나의 친구 같은 아빠가 싫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난 진정한 어른으로 아빠를 떠올린다. 어딘가 작은 모순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시나브로 커져 하늘에 먹구름이 되어 아직 정의 내리지 못하겠다. 고민의 표면에 안착한 것이라곤 “공과 사를 구분한다”는 것뿐..
되고 싶다 해서 바로 어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기에 나를 더 애타게 만든다. 어른에 대한 집착으로 볼 때 난 아직 까마득하게 어리다.